<과학혁명> 자연과학

스티븐 샤핀, 한영덕 역 <과학혁명>(영림카디널, 2002)


과학혁명에 대한 저명한 저작 중 한 권인 <과학혁명>을 읽었다.

훌륭한 책. 번역은 나쁘진 않지만 아쉽다. 영어식 표현을 그대로 옮김으로써, 자칫하면

한국 독자들이 오해할 수도 있는 구석들이 종종 등장한다. 뭐 그렇지만 크게 오역이 있다든가

하는 차원은 아니니, 일독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겠다. 그러나 샤핀의 견해를 숙고하고

싶다면 원서로 읽어야 할 듯하다.


"과학혁명 같은 것은 없었다. 이 책은 바로 그에 대한 이야기다."(9)

이것이 서론 첫머리다.

과학혁명에 대한 (역설적이게도) 꽤나 비과학적인 통념, 특히 과학자들이 만들고, 또 스스로도

그렇게 확신되곤 하는 그런 통념에 대한 튼실한 비판이요, 소위 과학혁명기에 대한 재구성이다.


특히 알렉상드르 코이레의 <갈릴레오 연구> 등을 위시한 고전적 저작들에 대한 비판이 강렬하다.

나는 요즘 <갈릴레오 연구>를 읽고있는데, 이 시점에서 이 책을 읽은 게 꽤나 유용하다.


핵심적인 논제 한 가지만 거론한다면, 기계론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다.

기계론은 근대과학의 핵심으로 인정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실은 르네상스 자연주의에 대한 비판이며,

기독교 세계관을 정립하는 중대한 계기기도 했다는 것.

예컨대, 근대 과학자들의 기계론은

한편으로는 르네상스 자연주의를 비판하는데,

이 자연주의는 핵심적으로 만물에 힘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근대 기계론자들은 이를 비판하는데, 그러므로 물질은 철저히 수동적인 것으로 기술된다.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그러나 이 물질에는 수동적인 물질(현대의 물질관과 동일한)

이자, 그러므로 (이 세계의 역동적인 운행과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끊임없는 개입이 요청된다.

그러니까 물질의 운동은 수동적인 물질이라는 재료가 하나님의 개입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다.

이들은 물질에게 힘을 부여하는 흐름을 자연주의에 절대적으로 반대한다는 점에서 현대 기계론과

동일히지만, 그러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개입을 필연적으로 요청했다는 점에서 현대 기계론과

상극이라고 할 수 있다.

헌데 과학사는 이 뒷부분을 제외하고 앞부분만을 강조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뉴턴의 만유인력 과학은 사실 당시 기계론자들이 기계론적 자연철학에 정반대된다

해서, 극력 반대했던 것이다.

만유인력 같은 신비로운 힘을 핵심 원인으로 상정하는 이론이 어떻게 과학적인 이론이란 말인가?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 등, 상식적인 기계론자들의 반박이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뉴턴의 과학에는 수학을 핵심으로 한다는 특징으로 인해,

현대 과학의 핵심과 상통하게 된다.

결국 현대 과학에서도, 관찰이나 경험보다는 만유인력과 수학이 핵심이 되게 되는 것이다.

관찰이나 경험만으로는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획득할 수 없으므로,

관찰과 경험에서 출발하된, 필연적인 인과관계는 인력과 수학을 통해 정립하며,

그 결과를 수많은 관찰과 경험과 부합시켜나가는 과학의 원형이 창조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리고 샤핀 식으로 보자면, 이런 노선이 확립된 것은

17세기 이후 한참 뒤의 일이며, 그런 연후에 역사를 재구성한 것이다.

마치 17세기에 그런 과학개념이 확립된 것처럼....


과학혁명에 관한 다른 저작들을 좀 더 읽어가면서 소위 과학혁명에 대한 숙고를 계속하기로 한다.

파이어아벤트, 코이레, 쿤의 고전적 저작과, 최근 출간된 토머스 헨킨스, 피터 디어 등의 저작이 그것이다.




<아이작 뉴턴> 자연과학

제임스 글릭, 김동광 역 <아이작 뉴턴>(승산, 2008)


저명한 과학 저술가 제임스 글릭과는 이상하게도 잘 맞지 않았었는데,
(<카오스>도 좀 이상했고, 같은 주제를 다룬 <혼돈의 과학>(범양사) 쪽이 내게는
더 좋았다. 파인만의 일생을 다룬 <천재>는 좀 읽다 나중에 읽기로 마음 먹었는데,
일단은 번역이 다소 아쉽더라는...)

이 책은 꽤 만족스럽다. 명성에 걸맞는 수작.

번역은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아쉬운 편이다.


본문 약 200쪽에 불과한(그러나 후주가 상당한 분량이며, 그 내용도 간과할 수 없이 좋다) 책에서

이마만큼 충실하게+극적으로 뉴턴의 삶과 핵심 사유를 짚어낸 것은 역시 글릭!이라 할만 하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들어가면 역시나 서구인(혹은 미국인)의 한계가 분명하다.

즉, 뉴턴이 '힘'을 중심 개념으로 도입한 것이 얼마나 중대한 지점인지가 포착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뉴턴의 힘 개념은 연금술적 상상력이 과학에 직격 도입된 것인데,

이것은 데카르트를 중심으로 하는 기계론(철학적 과학)과 정면 대립하는 것으로,

당시에도 데카르트 주의자나 라이프니츠 등에게 강하게 반박되었던 것이다.

다만, 그런 힘을 도입하되, 그것을 철저히 수학(기하학)으로 전개하여 당대의 경험 데이터와

최대한 부합시켰던 것이다.

간략히 말해서 이런 뉴턴 과학의 특징은 현대에도 거의 그대로 계승되고 있는데,

문제는 과학이 자신을 표상하고 주장하는 모습과는 매우 동떨어진(혹은 상반된) 모습이라는 것이다.

과학의 자화상에 걸맞는 쪽은 오히려 데카르트 주의 쪽인데,

과학에서는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해야 하며, 특히나 원인에 대해서는 더 할 수 없이 합리적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헌데 뉴턴은 기계론적인 사유로는 현상들을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일단 힘을 도입한다. 그런 다음, 수학을 사용하여 힘을 전개시킨다. 그리고 경험 데이터와 부합시킨다.

이것이 기가막히게 현상계를 설명하였는데, 글릭도 썼듯이, 뉴턴 과학은 예측과 승리를 통해 주류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과학 자체가 잘못이라던가, 그래서 반대한다는 게 아니고,

위에 썼듯이, 과학이 스스로 주장하는 자신의 모습과 상반된다는 말이다.

뉴턴식으로 과학을 계속 하려면 과학의 자화상을 바꿔야 하는데...

물론 최근에는 대부분의 주류 과학자들이 실재와 과학의 일치를 주장하지 않으며,

모델과 경험의 부합성을 중심으로 판정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앞서, 스티븐 호킹의 <장대한 설계>

포스팅에서 호킹의 모델론을 언급했던 게 바로 이 노선이다).

헌데 그러면서도 과학상은 다른 걸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뉴턴에게 참으로 경탄했던 것 중 하나는,

오랫동안 궁금했던 미적분의 핵심 난문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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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난해한 수학을 독자들에게 새롭게 제시하기보다는

그 근거를 정통 기하학에 두었다. 정통이라고는 하지만 뉴턴이 무한대와 무한소를 포함시켜야 했기

때문에 여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뉴턴의 도해는 정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역동적 변화를 표현하고

있었다. 뉴턴의 명제는 끊임없이 같아지려 하거나 무한히 감소하는 양과 동시에 접근하다가

결국 사라지는 면적, 일시적 증분과 궁극적 비와 곡선 극한 등에 대해 말했다. 뉴턴은 유한한 것처럼

보이지만 소멸점에 있음을 뜻하는 선분과 삼각형을 그렸다. 뉴턴은 근대적 분석을 고대의 복장으로 위장

했다. 뉴턴은 독자들이 역설에 대비하도록 노력했다.

  "소멸하기 전에는 비율이 궁극적이지 않고, 소멸한 뒤에는 비율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므로

  소멸해가는 양의 궁극적 비율과 같은 것은 없다고 하면 반대할지도 모른다. ... 그러나 그 답은

  간단하다. ... 소멸해가는 양의 궁극적 비율은 소멸하기 전이나 소멸한 뒤의 양의 비율로 이해

  되는 것이 아니라, 양이 소멸하는 비율로 이해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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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 직접 인용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뉴턴의 미적분은 운동론적 기하학으로서,

양이 소멸하는 비율을 포착한 것이다.

소멸해가는 운동과정을 기하학화한 것, 이것이 바로 뉴턴의 미적분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라이프니츠의 미적분법은 어떤 것일까? 그는 이 난문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뉴턴과 같은 방식?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 궁금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사용되어 왔던 무거움(gravity)을 인력(attraction), 그것도 만유인력

으로, 힘으로 새로 포착한 것은 정녕 위대한 거보였다. 그에 동의하든 안하든 말이다.


뉴턴의 힘 개념을 단지 새로운 정의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뉴턴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아울러 갈릴레이의 관성의 법칙의 혁명성도. 그 혁명을 완성시킨 뉴턴의 위업도...

그러니 갈릴레이와 뉴턴을 넘는 새로운 과학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과학은 하나고, 부분적인 수정을 거치면서 영원히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이런 과학관은 서구 기독교의 진리 개념과 얼마나 유사한가!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 좋은 글 소개 자연과학


<절차탁마 대기만성> 인문학

김용옥, <절차탁마 대기만성>(통나무, 2007)


<기독교 성서의 이해>를 읽고 좋아서, 오래 전에 나왔던 이 책을 구입했다.

청년(?)은 아니고, 소장학자였던 도올의 힘찬 붓길을 느낄 수 있다.

단호한 격류라고나 할까?


해석학이라고 하면 뭔가 서구스럽고, 보통의 우리와는 거리가 좀 먼 학자들의

세계로만, 멀게만 느껴지는데,

도올은 그로부터 훌쩍 점프하여 우리 시대의 해석학이 꼭 필요함을,

성서에 대해서는 물론 동양의 경학을 대할 때에도 절실히 필요함을

역설한다.


감동적인 외침!

<LHC 현대물리학의 최전선> 자연과학

이강영 <LHC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사이언스북스, 2011)


잘 쓴 책. 유익하고 재미있다.

전반부에는 현대 물리학 발전 과정(특히 소립자 물리학을 중심으로)이 훌륭하게 그려져있고,

후반부에는 책의 주제인 LHC 관련 사항이 실제적으로,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다.

즉 단지 이론적인 문제에 머물지 않고 LHC의 실제적인 구조나 구체적인 크기, 용량, 낼 수 있는 에너지

범위, 필요한 냉각 수준과 그걸 달성하는 몇 단계의 방법, 또 가속시키는 몇 가지 단계 등이

더할 수 없이 잘+효율적으로 쓰여져 있다.


2부가 다소 어렵긴 하지만, 그건 모두 이해하겠다고 덤벼들 때 얘기고,

그냥 현대 물리학 발전사를 생생하게 일람하고 싶으면 충분하다.

나로서는 2부를 두, 세번은 더 읽고싶다(아마 그렇게 될 듯).

그 전에 표준모형 공부를 조금 하고!


이강영 선생님이 시간 내서 다른 주제의 책도 써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책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새 물리학의 태동> 물리를 사유한다

버나드 코헨, 조영석 역 <새 물리학의 태동>(한승, 1998)


이런 책 추천할 때 기분 좋다.

표지만 봐서는 이렇게 좋은 책인지 알 수 없지만, 읽어보니 좋아서

소개할 경우... 그것도 매우 좋을 경우...


버나드 코헨은 과학사의 대가라 이름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저자는 책 앞부분에 "본 저서는 본격적인 과학사를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과학의 진보 과정에 있어서 몇 가지 에피소드에 대하여 역사적인 관점에서 가볍게

서술한 수필집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지만,

"가볍게 서술한" 게 이 정도라니, 할 말 다했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턴. 이들이

정말 혁명한 것은 무엇인지, 넘어야 했던 장애물이 얼마나 험난한 것이었는지

이들이 제시한 비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찬찬히 설명해준다.


자세한 논평을 하지는 않겠지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뉴턴에게 있어서 힙의 도입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건 당연지사지만,

힘이라는 개념이 왜 도입되게 되는지,

이전에는 왜 그 개념을 쓸 수 없었는지...


나는 뉴턴 혁명에서 힘의 개입이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느끼고 있는데,

끝내 이 부분을 다루지 않는다.(즉, 인식론적으로 어떤 단절을 감행했는지

전혀 설명없이, 그냥 도입해버린다).

코헨의 다른 저서를 곧 읽을 예정인데,

힘 문제가 다른 저서에서는 다뤄질지 무척 궁금하다.

이전에 읽었던 김성환의 <17세기 자연철학>(그린비)에서는 이 문제를 중대하게 다루는 걸

보았었는데...


또 하나 중요한 건 관성 문제인데.

이것이 갈릴레이와 뉴턴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관성(의 법칙)이란 정녕 무엇인지...

갈릴레이와 뉴턴의 관성 개념의 커다란 차이는 무엇인지

등이 꽤 잘 설명되어 있다.


가볍게 쓴 것 같지만, 이토록 중대한 측면들을 가볍게 읽히도록

쓰려면 얼마나 많은 공부와 문헌 연구가 뒷받침되었겠는가...


과학혁명의 의미를 진심으로 알기 위한 분들에게 강추!

코헨의 다른 저서들도 얼른 번역되기를...

<위대한 설계> 자연과학

스티븐 호킹,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전대호 역 <위대한 설계>(까치, 2010)


나라면 제목을 장대한 설계라고 번역했을텐데. 

원제(the Grand Design)가 그렇기도 하지만, 내용도 그러하다.

대가다운 스케일과 적당한 유머, 커다란 전환점 제시 등, 얇은 책인데도 역시나 훌륭하다.


1. 호킹은 모형의존적 실재론을 주장하는데(포퍼를 연상시키는데, 좀 더 따져봐야겠다).

과학(이론)은 실재와의 적합여부를 따져야할 게 아니라,

경험(관측 포함)과 모형과의 적합 여부를 따져야 한다는 것. 실재를 개입시키지 말 것.

지동설은 천동설보다 실재에 가깝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경험(관측)에 좀 더

부합하기 때문에 채택되어야 한다는 것.


2. 자연현상을 보며 신의 존재 여부를 고민할 때, 두 가지 상반된 맥락이 가능하다(역사적으로도 그러하다).

 전쟁이나 카오스, 초자연적 현상은, 일상적인 물리적 패턴(법칙)으로는 설명 불가; 그러므로

    1) 신들의 변덕이나, 신들간 전쟁의 결과. 그러니까 그건 자연법칙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 인간의 책임도 아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신들을 잘 이해하는 것; 신화적 서사
        물리적 법칙과 패턴을 믿고 그것을 연구하는 것; 자연학
    2) 자연현상이 물질들 간의 불규칙하고 우연적인 상호작용에 불과하다면, 만일
        그렇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조화나 질서가 있다. 정교하고도 장대한 질서 및 체계
        이것은 자연 스스로 생성할 수 없는 것이며, 여기에는 의지와 이성을 가진 신의 자취가 있다.
        혹은 범신론이나 이신론의 대상으로서의 신.
        ; 신학(특히 기독교)의 주장.

근, 현대 과학은 자연법칙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1), 2)와는 달리 우연이나 기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서 신을 주장하려면 보편적이면서 우주의 모든 것을 연역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법칙 자체가 신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왜'가 필요없다. 모든 것은 법칙이 펼쳐진 것이니까...

헌데 호킹은 이제 과학은 '어떻게'만이 아니라 '왜'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서두에서 이제 '철학은 죽었다'고 선언

한 것도 이와 관련된다. 이제 전통적으로 철학이나 종교에게 임시로 맡겨졌던 질문을 과학 스스로 떠맡을 때가 왔다는

것이다. 철학이 낡아버린 것도 같은 맥락을 제공한다).

우주론 관련하여 '왜'라는 질문은, 왜 이 우주인가? 수많은 우주가 가능한데,

왜 하필이면 이 우주인가?


몇년전 빈의 대 주교는 "현대 과학이 발견한 사실들, 목적과 설계를 입증하는 압도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자연에 설계가 내재하며, 이로써 다시 한번 인간의 본성을 방어"하겠다고 했다.

호킹은 이 주장 자체에 시비를 걸지 않는다. 왜냐하면 호킹 자신도 현대 우주론과 물리학에 따르면

우주의 초기 조건에서 현재까지의 우주의 역사나 현재의 우주의 환경들은 필연적으로, 연역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마치 지적 생명체의 탄생을 위해서, 그런 목적에 우호적이도록, 우주의 초기 조건에 끊임없이, 중대한

미세 조정이 가해졌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여러 가지 물리량들이나 우주 상수를 비롯한 상수들은 꼭 이러할 필연성이

전혀 없다. 다른 것이었다 해도 하등 물리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문제되는 것은,

만일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생명은, 나아가 지적 생명체는 진화해나올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우주론이나 물리학의 증거들은 압도적으로 자연에 설계가 내재함을 입증한다.

우주의 초기 조건에서 지적 생명체가 진화해나올 수 있도록 모종의 가이드(guide)가 계속 우주를

특정한 방향으로 미세조정시켜왔다는 것이다.

호킹은 이런 점을, 양자역학의 경로합(역사 합)과 관측자의 역사 결정 역할 등을 결합하면서

설명한다.

다만 호킹이 빈의 주교와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이 세상에는 "이 우주"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일 이 우주만 존재한다면 그도 빈의 주교와 동일한 생각을 하거나, 최소한 그의 생각을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초끈 이론 등이 주장하는 바대로, 이 우주는 광대한 우주의 풍경 중 극히 일부분이라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만일 주사위를 던져서 1만 100번 연속 나왔다면(한번도 다른 숫자가 안나왔다면), 그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확률적으로는 100번 연속이 아니라 1억번 연속이라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래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즉 주사위의 특수성이나 던지는 사람의 특정한 무엇 등을 고려해볼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헌데 만약 1만 100번 연속 나온 결과가, 실은 10의 500승회 정도 계속 던져서 나온 결과들 "중의 하나"라면 어떨까?

거기에는 하등의 신비나 이상할 게 없다. 거기에는 100 연속 1인 경우 외에도 99연속 1이 나온 후 3이 나온 경우도 있고,

2가 나온 후, 96회 연속 1이 나오고, 4, 1이 나온,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세 경우 각각은 하도 신비스러워 합리적으로 설명이 불가할 정도지만,

주사위 100번 던지기를 10의 500승회 계속 하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결과들이다.


2. 도킨스는 이를 창조론에 대한 결정타라 불렀는데, 사실 여기에는 좀 더 중요한 의의가 있다(호킹 등 과학자들은

받아들이기 꺼려할 수도 있는).

호킹의 주장은 초기의 물질적 조건만으로는 현재까지의 우주의 역사와 우주의 현재가 연역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리적 법칙을 위배하는 현상이 일어났던 건 아니지만, 물리적 법칙이 작용했다고 해서 반드시 지금 이 우주가 될 필연성은

없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만일 물리 법칙이 평범하게 실현되었다면 생명도, 특히 지적 생명체도 진화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베릴륨이 곧장 헬륨으로 붕괴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도, 베릴륨이 어떤 조건을 맞아(행운!) 헬륨과 결합하여 탄소를

생성해냈다. 탄소가 생성되지 않았다면 생명은 진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규소 같은 것으로도 가능하지만,

그 확률은 더 낮다). 그런데 어떤 조건(미래에 진화해나올 생명체에게는 기막힌 행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가해졌다. 물리법칙에 미세조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미세조정이 한, 두번이 아니라, 게다가 우주론적으로나

생명론적으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물리량들과 관련하여 수도 없이 행해졌다는 것이다.(만일 이런 과정을 설계라 부르지 않는다면, 설계라는 말의 용도가 어디란 말인가?)

호킹의 이러한 기술(사실 현대의 많은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이지만)은 간단히 말해서 우주의 물리량들은 초기 조건에서

필연적으로 연역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호킹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도, 내가 쓰는 것과 다르지 않은데, 그는

이런 설계의 발견이, 과거의 단일한 역사를 추적해서 얻은 확신이 아니라(이건 고전역학적 과거관이다),

(그와 달리 양자역학적 과거관처럼) 현재의 관측자가 무수한 수의 가능한 과거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살펴봄으로써 하나의 과거로 확정했다는 것이다. 무수한 가능적 과거들이 관측자의 관측 순간 붕괴하여 하나의 과거로 확정됨.


만일 그렇다면 자연과학은 그동안 무시해왔던 역사를 재도입해야 한다.

만일 지금까지의 우주사와 현재의 우주 조건이 초기 우주의 조건의 필연적인 결과라면, 우주가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역사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러나 초기 이후 끊임없이 중요한 미세 조정이 이뤄져 왔다면,

우주의 역사는 초기 우주 -> 미세조정된 우주 -> 그 바탕 위에서 우주의 진화 -> 그런 우주에 가해진 미세조정들 -> 그

바탕 위에서의 진화 -> 미세조정들 .....> 이렇게 되어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주가 필연과 반대되는 우연의 산물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필연으로 환원되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말하자면 contingent한 우주랄까... 예컨대 1기 우주에 이어질 수 있는 우주는 여러 종류가 있다(A, B, C, D,,..등등).

헌데 그 중 특정한 우주인 A우주가 선택되었(2기 우주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의 3기 우주는 2기 우주를

바탕으로 미세조성된 우주만 가능하지, B우주나 C우주를 미세조정한 것이 될 수는 없다.

요컨대 3기 우주는 1기 우주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우연적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인 없이 발생한 사건을 가리키는 식의 우연은 결코 아니다. 2기는 1기의 바탕 위에서, 3기는 2기의 바탕 위에서

실현된 것이니까... 이런 면에서 1은 2와 contingent하고, 2는 3과 contingent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과학은 어떤 경우에도 위배되지 않는 자연법칙을 탐구함과 동시에

각각의 contingent의 성격과 그것이 산출하는 구체적이고 특정한 우주, 그리고 그 우주들이 계속 이어지는 과정(즉 역사)을

탐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주의 역사와 현재의 우주의 조건 및 상태를, 그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호킹은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할까?

아마 반은 수긍하고 반은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수긍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그는 다우주론을 믿고 있으며, 다우주론 전체를 고려했을 경우에

모든 우주 전체는 하나의 장대한 설계로 모두 기술할 수 있고, 그때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것은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신의 자리는 또 마련되는 것 아닌가?(이 문제와 생명 게임과의 관련에 대해서는

다음에 생각해보기로...)


3. 인간원리 문제; 호킹의 책을 읽고 인간원리(인본원리)를 이해하게 되었다(다른 사람들의 설명은

깊이있게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그는 특히 양자역학 관련해서 이 점을 이해하고 있다.

나는 양자역학의 세계상이 인본원리보다 더 깊은 통찰, 더 많은 통찰을 제공할 거라 느끼고 있다.

깊이, 다양하게 생각을 펼쳐볼 일이다.

<기독교 성서의 이해> 인문학

김용옥 <기독교 성서의 이해>(통나무, 2008)


훌륭한 기독교 경전의 성립사.

신약의 성립 순서(바울의 서한 -> 마가 -> 마태-누가 -> 요한)는 물론,

헬레니즘(더 이전까지하면 희랍 사상까지)과 기독교의 상관성을

깊은 통찰력으로 묘파해내고 있다.

총 18장인데, 모든 장이 다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우리가 흔히 기독교 전통이라 믿는 것은, 32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의 니케아 회의 이후,

즉 기독교가 로마황제교로 확립된 이후의 내용이며,

이는 초대교회(요즘식의 교회라는 제도와 달리 신앙인들의 공동체 성격)부터 4세기초반까지의 기독교와는

대립적인 측면이 많아, 오히려 기독교의 반전통이라 할 만하다.


헬레니즘과 영지주의에 대해, 신플라톤 주의 등 기원 전후의 사유 흐름에 대해서도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기독교인에게도, 비기독교인에게도 강추!

<파인만의 QED 강의> 자연과학

리처드 파인만, 박병철 역 <파인만의 QED 강의>(승산, 2001)


1980년대 전반에 했던 강의록. 친구였던 여성에게 물리학을 강의해주겠다던

약속을 (아쉽게도 죽음 직후에) 지킨 것.

주 내용은 양자전기역학(QED)에 대한 것으로, 그 주도자인 파인만에 의해

듣는 맛이 역시나!다.


20세기 후반의 물리학에 대한 책을 읽을 때, 전자와 광자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던 대목이

특히 가상광자가 나올 때 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이 책을 보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울러 재규격화에 대한 네쨋날의 내용도 유익했다.

살람과 와인버그의 전자기력과 약력의 통합 대목도 역시나 간략했지만

머리에 쏙 들어왔다. 역시 파인만은 핵심을 곧바로 기술하는 능력에서 천부적이다.

결국 자연계의 다양한 현상들이란, 광자와 전자의 상호작용(광자가 전자에 영향을 주어 거기서

새로운 광자가 방출되는 것)의 변주들이다. 물론 여기서 중력의 문제는 제외지만.

그러니 양자전기역학은 얼마나 대단한가! 전기역학의 양자역학화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남는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다. 핵 자체에 대한 것.

그것은 이후 양자색역학에서 심층 탐구되는데(여기에는 저 유명한 겔-만이 슈퍼스타다),

그건 이 책에서는 간략하게 서술된다. 그래도 다른 책에서 읽었던 것을 바탕으로

더 많은 걸 이해할 수 있었고, 체계도 좀 더 잡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좋은 감상을 주로 썼지만, 솔직히 다 읽고나니 얼떨떨하기도 했다.

지금 나는 뭘 읽은 거지?


<1Q84 2, 3권> 문예, 영화, 연극...

<1Q84 2, 3권>

1Q84라.... 작품에 따르면 1984년에 의문의 Question Mark의 Q를 바꿔넣은 것,

혹은 아이큐가 84라는 뜻?

혹은 총 페이지수가 1984쪽? 뭐, 일본쪽 원서는 어떤지 몰라도 한국어 번역본은

(재미삼아 1, 2, 3권 본문의 쪽수를 모두(656, 597, 744쪽) 더해본 결과, 짜자잔) 1997쪽이다.

음, 우연이라고만 치부하기엔 그래도 꽤 가깝지 않은가? 그렇다면 혹시 원서는?

1권 554, 2권 501, 3권 602 그러니까 모두 더하면(윽 한심하다...) 1657쪽(?) 어쨌거나 1984쪽은 아니다.

가뜩이나 시간 아깝다 싶었는데, 결과까지 이러니.... 좀 된 얘기지만 <천의 고원> 국역본은 딱 1000페이지...

였지 않았던가....?


좀 길긴 했지만, 그래도 하루키류의 장점에 추리소설 기법이 가미되어 스릴까지 있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이런 작품이 또 있다면 또 읽을까? 부정은 아니지만, 한여름이나 한겨울 밤에 시간이 좀 많고... 또 시간이 많은

존재임을 누리고 싶을 때라면...


2권 중에서 p. 343

"덴고는 내가 그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어떤 형태로든 알게 되나요? 아니면 끝까지 아무것도

모르게 될까요?"

p.528.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는 그를 위해 죽어가려 한다. 나 자신을 위해 살지는 못했다. 그런 가능성은

처음부터 내게 없었다. 하지만 그 대신, 그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다. 그러면 돼. 나는 미소 지으며

죽을 수 있어.

거짓말이 아니야.

p.576

그는 더 이상 장래가 촉망되는 수학 신동도 아니고, 유망한 유도 선수도 아니었다. 그저 학원강사다.

하지만 그것이 덴고는 좋았다. 그는 거기서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는 일 없이 자기 혼자 자유로운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p.592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건 덴고도 알고 있었다. 만일 그 안에 있는 것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이곳을

떠난다면 분명 나는 평생 그것을 후회하리라. 그 무언가에서 눈을 돌려버린 것에 대해 언제까지고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리라.

    <1Q84>의 이 문장을 보니 <스키캠프에서 생긴 일>의 마지막 문장이 퍼뜩 튀었다가 포개졌다. 찾아보자...

    "집안의 카펫 때문에 발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지만 니꼴라는 곧 문이 열릴 것임을 알고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그의 인생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 삶에서는, 그에게 용서란 있을 수 없음을(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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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35. 수상쩍은 점은 없다. 하지만 무언가가 우시카와의 의식의 저 먼 가장자리를 걷어차고 있었다.

463. 그래도 그녀의 눈빛에는 우시카와의 행동을 나무라는 기미는 없었다. 그녀는 아득히 깊은 곳에서

나를 이해했던 것이다, 우시카와는 그렇게 느꼈다.

464. 눈을 감으면 후카에리의 시선이 남기고 간 욱신거림이 갈비뼈 안쪽에 느껴졌다. 아픔은 바닷가로 서서히

밀려오는 온화한 물결처럼 다가왔다가 멀어져갔다. 다시 다가왔다가 멀어져갔다. 이따금은 얼굴을

찡그리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깊은 아픔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따스함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우시카와는 그것을 깨달았다; 전형적인 악역, 추하고 혐오스러운 악역에게

후카에리는, 하루키는 사람을 선물한다. 독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이 대목을 선물했다.

495. 나도 언젠가 저런 조용하고 온당한 세계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하루키 주인공들의 절실한+상투적인 바람.

529. 상대는 방금 전에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546. "그럼 나는 대체 뭐죠?" 덴고는 물었다.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이 아버지의 간결하고 단호한 대답이었다.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덴고는 새삼 입

    밖에 내보았다.

568. 어쨌든 이제 덴고는 천애고아의 신세가 된 셈이군, 우시카와는 생각했다; 덴고,... 한자로 天吾였던가...

584. 나는 우여히 이곳으로 실려온 것이 아니다. (...) 나는 있어야 하기에 이곳에 있는 것이다.

651. 하지만 여기까지다, 아오마메는 마음을 정한다. 그녀는 입술을 뒤틀며 좀더 크게 얼굴을 찌푸린다. 지금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제 마음대로인 누군가의 의지에 조종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단 하나의

원칙, 즉 나의 의지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작은 것을 지킨다. 이건 내 인생이고, 이 안에 있는 것은

내 아이다. 누가, 어떤 목적을 위해 프로그램한 것이든 이건 의심의 여지 없이 나와 덴고 사이에 생긴 아이다.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는다. 무엇이 선한 것이건 무엇이 악한 것이건, 이제부터는 내가 원리고 내가 방향이다.

누가 됐든 그것만은 똑똑히 기억해두는 게 좋다.

675.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사랑받은 적도 없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 적도 없었다.

676. 그때의 두 사람은 알지 못했지만, 그곳은 세계에 단 하나뿐인 완결된 장소였다. 한없이 고립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고독에 물들지 않은 장소. (...) 또한 그는 이 새롭게 찾아온 세계에 자신을 동화시키기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마음을 두는 법을, 풍경을 바라보는 법을, 언어를 선택하는 법을, 호흡하는 법을, 몸을 움직이는 법을, 이제부터

하나하나 조정하고 다시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시간을 그러모아야 한다.

아니, 어쩌면 이 세계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수술이 끝나고 내 속은 하나하나 배워야 했지. 오줌 누는 법, 방귀뀌는

법, 웃는 법, 화내는 법 등등을...

700. 우리가 같은 세계에 있고, 같은 것을 본다는 것을.

711. "우리는 이제부터 어디로 이동하게 될까? 너와 나와 그 작은 것은."
    '여기가 아닌 곳으로." 아오마메는 말한다.

712. "우리는 서로를 만나기 위해 이 세계에 왔어. 우리 스스로도 알지 못했지만 그게 우리가 이곳에 들어온 목적이었더.

720. 그녀 또한 풍만한 가슴을 갖고 있었다; 여기선 아오마메가 오쓰카 다마키와 나카노 아유미를 떠올린 것. 헌데

생각해보면 덴고가 순간적으로 강한 현기증을 경험할 때마다 떠올렸던 것, 바로 제 엄마가 (아빠 아닌) 다른 남자 앞에서

슬립끈(?)을 내리고 젖꼭지를 그 사내에게 빨리는 장면이 아니었던가! 젖가슴, 젖꼭지...

727. 광고판의 호랑이는 왼편 옆얼굴을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호랑이는 분명

오른쪽 옆얼굴을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호랑이의 모습이 반전되어 있다; 반전 대칭성? CP 대칭성?

729. 혹시 이곳은 또 하나의 다른 장소인 게 아닐까. 우리는 하나의 서로 다른 세계에서 또 하나의 다른,

제삼의 세계로 이동했을 뿐인 게 아닐까.

730. 도착한 곳이 예전의 세계이건, 또 다른 새로운 세계이건, 두려울 게 무엇인가. 새로운 시련이

그곳에 있다면, 다시 한번 뛰어넘으면 된다. 그뿐이다. 적어도 우리는 더이상 고독하지 않다.

737. 아오마메는 덴고의 가슴에 귀를 댄다. "나는 오래도록 외톨이였어. 그리고 여러 가지 것에 깊이 상처를

입었어. 좀더 일찍 너와 재화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았을 거야."

덴고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걸로 좋은 거야. 지금이 마침 적당한 때야. 우리 둘 다에게."

(...) 그는 말한다. "우리가 얼마나 고독했는지 아는 데는, 서로 이 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야." "움직여줘."

아오마메는 그의 귓가에 말한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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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이 책에는 작가의 말도, 옮긴이의 말도 없다. 그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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